일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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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뭔지 알아요?
_술에 진탕 취하신 귀여운 대장은 같은 말을 계속 번복했다. '사랑이 뭔지 알아요?' '사랑이 뭔지 아냐구요?''그러니까 사랑을 아냐구요?' 술에 취하면 자기 말만 곱씹는 대장. 홧김에 또는 술김에 이것저것 두서없이 떠도는 말들은 잘 귀담아듣지 않는데도유독 저 말은 내 가슴에 비수처럼 꽂힌다. 너무 알아서 일까 아니면 너무 몰라서 일까?내 안에 모든 감정들이 삽시간에 요동친다. 웃어야 할까 아니면 울어야 할까 아니면 화를 내야 할까 아니면..아니면 나는 그냥 아무렇지 않은 걸까? 어떤 게 맞는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허나,모르겠지만 나는 너무나도 불분명한 지금 이대로가 좋다는 것인데 생각해보니 내가 이러기로 마음먹은 일인걸, 살면서 한 번도 시도해보지 못한 일이었다.이런 선택의 기회를 날려버리지 않은 것..
2020.06.18 -
Release= Blue
몇년 전부터 시작된 지독한 파란색 사랑.당시의 파란색은 이름이 있었다. 이브 클레인 블루. 사실 따라하기도 힘든 블루였다.왜냐면 이브 클레인의 블루였기 때문.'남자는 핑크지' 라고 말할때면'나는 블루지' 라고 외쳤다. 파란색 질리지도 않냐 라고 물으면그때마다 너무 좋은데 어떻게 질릴수가 있냐 라고 회답할 뿐이었다.나에게 변화가 찾아올때마다 여러 색들을 경험하기도 하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나 블루지. 오늘 낮에 내 앞에 차가 한대 섰는데,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렇게 예쁜 파란색 포르쉐는 처음 본다.몇달전에 길가에 주차된 M2 블루 (찾아보니 롱비치블루 라는 이름의 색상이었다) 예뻐서 따릉이를 세워놓고 구경을 했더랬다. 아주 잠깐이긴 했지만 가던길을 멈추게 했다는것 만으로도 나에겐 의미있는 일이었..
2020.06.08 -
Waiting for Godot
Samuel Beckett _ 지난날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을 생각하면 너무 침묵했고 너무 침묵해서 어쩌면 부서져 버린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는데, 어느날 눈을 뜨고 일어나 보니 그것들은 단지 어떤 현상에 불과했다. 하늘에 먹구름이 껴있거나 혹은 비가 온 다음날 하늘이 청명해지거나 또는 겨울이 다 지나 어느덧 작년의 봄날을 또 만끽하는 지금처럼. 물론, 올해의 봄날은 전염병으로 인해 지독하리만큼 조용하고 우울해져 버린 것도 사실이지만 그뿐인걸. 명확한 사실은 인생이란 것이 내게 던지는 질문들에 만큼은 위에서처럼 현상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들처럼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며 그럼에도 그 가벼운 것들 속에 안주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어떤 선택의 여지도 없이 내가 인간의 모습으로 살고 있기..
2020.05.05